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폴로 9호 (문단 편집) == 꼬여버린 아폴로의 일정 == 아폴로 9호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. 미국은 [[아폴로 계획]]의 단계를 A, B, C, ..., J 등으로 나누어서 실행하기로 당초 계획해놓고 예산과 개발시한을 정해놓고 있었다. 그리고 아폴로 1호, 2호, ... 같은 식의 이름 대신 AS-201, 202, 203, ... 등으로 이름을 지을 방침이었다. 이 중 최초의 유인 비행은 AS-204. ~~하여간 우주왕복선 미션도 STS-51-L 같이 짓는 NASA의 괴이한 작명센스는 알아줘야 한다~~ 아폴로 7호 비행을 수행한 [[월리 시라]] 팀의 경우 원래 AS-205라는 명칭으로 미션에 나설 예정이었고, [[제임스 맥디비트]]의 팀은 AS-207, [[아폴로 8호]]의 [[프랭크 보먼]] 팀[* 원래는 [[짐 러블]] 대신 [[마이클 콜린스(우주비행사)|마이클 콜린스]]가 지구 고고도상 테스트를 수행할 보먼 팀의 사령선 조종사로 배정되어 있었다. 하지만 콜린스가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며 백업이었던 러블이 투입되었다. 그리고 콜린스는 8호의 백업이었던 [[닐 암스트롱]]의 팀에서 우주비행 경력이 없던 [[프레드 헤이즈]]가 빠진 대신 사령선 조종사가 되었고 기존 사령선 조종사 [[버즈 올드린]]이 LM 조종사가 되었다.]은 AS-208 미션을 수행할 예정이었다. 하지만 1967년 1월 AS-204 테스트 도중 화재가 발생해 [[거스 그리섬]], [[에드 화이트]], [[로저 채피]]의 팀이 몰살당한 뒤 진상조사와 사후대책 마련 등에 1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시간은 더욱 촉박해졌지만 우주선 개발이 지체되며 1968년 여름에야 [[아폴로 7호]]가 발사되어 지구 궤도상 사령선 테스트 임무를 수행했다. 그나마 사령선(Command/Service Module, CSM)은 발사를 했다고 쳐도, 1969년 12월에 [[달착륙선]] 개발을 완료하려던 미국의 계획은 계속해서 늦어졌고, 결국 NASA 관계자들은 아폴로 8호에서 달 착륙선과 신형 우주복을 테스트할 예정이었던 것을 1969년으로 미루는 대신 [[베르너 폰 브라운]]이 제안한 달 궤도상 사령선 단독 비행(!)이라는 희대의 미친 짓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. 이것이 1968년의 크리스마스를 장식한 [[아폴로 8호]] 미션이다. 당초 우주비행사 배정과 훈련 임무를 담당하던 [[디크 슬레이튼]]은 시라의 다음 순번이었던 짐 맥디빗의 팀에게 빨리 달 궤도 비행을 갔다 올지, 아니면 좀 기다렸다가 LM 테스트를 할지 결정하도록 했고, 아폴로 미션 일정이 바뀌기 전부터 그루먼에서 LM 개발에 참여하던 맥디빗과 러스티 슈바이카트는 그냥 LM의 최초 비행을 맡기로 결정[* 이 결정은 실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. 왜냐 하면, 이 결정으로 인해 맥디빗의 백업 팀이었던 피트 콘래드의 팀 역시 일정이 한 회씩 미뤄졌기 때문. 대신 보먼 팀의 백업이었던 [[닐 암스트롱]]의 팀이 11호를 맡게 되었고, 그 11호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 된 발자국을 남겼다.] 1968년 크리스마스가 지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